마을이 오고 있습니다

박달중학교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며칠 전, 늘 가던 카페에 들렀습니다.

커피를 기다리며 무심코 유리문 쪽을 보았는데, 우리 축제 홍보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누가 와서 붙이고 갔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종이 한 장이 카페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학교 담장 안에서만 돌던 일이 어느새 담장 밖으로 걸어 나가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일 앞에서 오래 망설였습니다. 학교가 굳이 지역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학교 일만으로도 벅찬데 왜 품을 밖으로 늘려야 하는가.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곳에 힘을 쓰면 다른 곳에는 반드시 틈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기서 나옵니다. 가만히 들어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쓸 수 있는 힘의 총량이 있고, 학교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다른 질문이 따라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자라는가. 하루 중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는가.

학교는 여덟 시간을 머무는 곳입니다. 스물네 시간 가운데 삼분의 일입니다. 아이가 하루에 힘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고, 배우려고 가장 애쓰는 곳이고, 그래서 갈등도 가장 많이 생기는 곳입니다. 그 삼분의 일을 우리가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럴 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남은 삼분의 이는 마을에 있습니다. 그러니 지역으로 나가는 일은 품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가운데 두고 자리를 잇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행한 것은 박달동이 정주 의식이 강한 동네라는 점입니다. 오래 살아오신 분들이 많고, 그래서 여러 단체가 풀뿌리처럼 서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그 연결 고리에 손 하나를 내미는 일입니다. 그 손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선순환의 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요일 오후, 운동장에서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10월 23일 오후에 지역 축제를 엽니다. 세 시 반부터 여섯 시 반까지입니다. 주제는 '함께 숨 쉬는 박달, 배움이 마을이 되다'입니다.

인근 특성화 고등학교 다섯 곳에서 기꺼이 부스를 맡아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체험과 경험을 내어놓으실 것입니다. 1580부대에서는 지뢰 탐지 로봇을 가지고 오십니다. 칠억 원짜리라고 합니다. 모형 지뢰를 실제로 탐지해 보는 활동도 한다고 합니다.

고백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지난 10월 8일에 미리 가서 저도 잠깐 그 로봇을 작동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터치감이 예민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칠억 원짜리 장비 앞에서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그날 저는 교장이 아니라 그냥 손이 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잘할 것 같아 벌써 조금 억울합니다.

이번 축제는 어린이 체험 부스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것은 아무래도 솜사탕일 듯합니다. 오종우 선생님께서 열심히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한쪽에는 플리마켓이 섭니다. 박지현 선생님께서 집에 있는 물건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고 나올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가 이번 축제의 백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금수저까지 나왔다고 하니 대단한 기부입니다. 공연도 준비가 잘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오는 손도 많습니다. 박달동과 호현동 자치위원회에서는 이미 생수를 기부해 주셨습니다. 박달 의용소방대에서는 안전을 맡아 주십니다. 늘품 학부모회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일일이 찾아가 홍보물 부착을 부탁하고, 손수 붙이고 다니셨습니다. 제가 카페에서 본 그 종이도 아마 그 발걸음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날은 밖에서 손님이 많이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직원들은 아침부터 차를 1580부대에 대고 걸어 들어오셔야 합니다. 하루의 불편을 그대로 감수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협조가 없으면 지역과 무엇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불편을 참아 주시는 선생님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솜사탕 기계 앞을 지켜 주실 오종우 선생님, 고맙습니다.

플리마켓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내신 박지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이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에 한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지역 축제 티에프 열한 분 선생님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모이고, 숙의하고, 협의해서 결정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셨습니다.

티에프가 아니어도 자기 자리에서 기꺼이 손을 보태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움직여 주시는 그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그날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연결하고, 정리하면서 꼼꼼히 준비해 주신 전안나 선생님의 수고에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학교의 훌륭함은 교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훌륭함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날 운동장을 뛰어다닐 아이들을 눈여겨봐 주십시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낯선 자리에 서면 문득 보이는 얼굴이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늘 조용하던 아이가 부스 앞에 서서 손님을 부르고 있는 장면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장면을 보시거든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마음에 담아 두셨으면 합니다. 저에게도 한 줄 알려 주십시오. 다음 편지에 그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박달이 품은 가치 가운데 하나는 '분주할수록 다정하자'입니다. 이번 주에는 누군가 옆에서 정신없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 움직임이 보일 때 "힘들지요, 제가 도와 드릴 것 없을까요?" 이 한마디면 됩니다. 그 한마디가 수고의 짐을 대신 내려놓게 합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무렵 이런 문장이 떠오를 것입니다. 박달은 역시, 동료가 복지구나.

참, 저는 그날 로봇 근처에는 되도록 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솜사탕 줄 뒤에 조용히 서 있겠습니다. 교장이 새치기를 하면 안 되니 맨 뒤에 서겠습니다.

이번 한 주, 여느 주보다 분주하실 것입니다. 금요일 오후에 운동장에서 뵙겠습니다.

이규철 드림
2026년 10월 19일 월요일 · 박달중학교